Billie J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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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82년 11월 30일에 발매된 앨범 Thriller에 수록된 마이클 잭슨의 노래. 1983년 1월 2일에 싱글이 발매되었다.'''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곡 중 하나이다. 이 곡의 가장 중요한 점은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한 슈퍼스타의 단독질주를 바라보게 했다는 것이다. 이는 음악 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전례 없는 현상이었다.'''
'''마이클 잭슨을 상징하는 곡'''이라고 할 수 있는 노래로, 앨범 Thriller가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이 되는 데에 큰 기여를 했으며 '''대중음악사에서 가장 위대한 명곡''' 중 하나로 자주 꼽힌다.
Billie Jean은 1980년대 마이클 잭슨을 국제적인 슈퍼스타로 만들었고, 잭슨 이전에 존재했던 대중음악의 위대한 음악가들과 그 위상을 나란히 하게 했다. 또한 백인 중심의 음악적 흐름을 흑인이 탈환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으며, 1984년 그래미 어워드에서 남자 R&B 가수상과 R&B 신곡상을 수상했다.
미국 빌보드 핫 100에서 7주간 1위, UK 싱글차트에서 2주간 1위를 차지했다. 또한 스위스, 스페인, 이탈리아에서도 1위, 오스트리아, 뉴질랜드, 노르웨이, 스웨덴에서도 모두 TOP 10 안에 안착한 명실공히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 싱글이다. 그 외 1989년 미국의 음반 산업 협회에서 플래티넘 인증을 받았다.
'롤링 스톤 선정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노래 500곡'에서 58위를 차지했으며 'New Musical Express 선정 글로벌 베스트 곡'에서 3위, 2003년 'VH1의 지난 25년 중 가장 훌륭한 곡 TOP 100'에서 2위를 차지하였다.[1] 그 외에도 BBC Radio가 선정한 '가장 위대한 댄스 뮤직 Greatest Dance Record of All Time'에서 1위, 음악 전문 채널 VH1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궁극의 No.1'에서도 1위로 선택되었다. 또한 '롤링 스톤과 MTV가 선정한 1963년 이후 가장 위대한 노래' 리스트에서 6위를 차지하였다.
2. 뮤직 비디오
뮤직 비디오는 스티브 바론이 감독했고 가사와는 전혀 다른 내용이다. 무엇이든 닿기만 하면 금으로 바꿔주는 신비의 소년 마이클 잭슨과 그를 은밀히 쫓는 파파라치를 다루는 내용이다. 이 비디오에서 입고 나온 발목이 보이는 검은 일자바지와 주름진 하얀 양말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로 자리잡는다. 스티브 바론 감독이 말하는 빌리 진 뮤직 비디오 비화.
3. 음악적 유산
이 곡의 프로듀싱 과정에 관여한 것은 세 사람으로 볼 수 있는데, 가장 중요한 인물은 당연히 '''작사, 작곡, 편곡, (공동)프로듀싱을 맡은 마이클 잭슨'''이고 Thriller 앨범의 총괄을 맡은 전설적인 프로듀서 퀸시 존스(Quincy Jones)와 믹싱 엔지니어 브루스 스웨딘(Bruce Swedien)이 있다. 마이클 잭슨이 단독으로 작사작곡을 맡은 곡이며, 대부분의 편곡에 관여했다. 음악적으로는 도나 서머의 'State of Independence'나 홀 앤 오츠의 'I Can't Go for That (No Can Do)' 같은 곡의 영향을 받았다고 많이들 설명한다. 특히 도나 서머의 곡의 경우 잭슨이 코러스를 맡기도 했다. 'State of Independence'의 경우 자신이 베이스라인을 훔쳐왔다고 마이클 잭슨이 장난스럽게 말한 바 있고[2] , 'I Can't Go for That (No Can Do)'의 경우 리듬 섹션이나 현악 신디사이저를 사용한 편곡 방식에서 영향을 받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위의 도나 서머의 경우처럼 이 곡에 대해서도 마이클이 장난스럽게 베이스라인을 훔쳐왔다고 한 바 있다.[3]
마이클 잭슨의 보컬적 효과음(딸꾹질 소리, 바람 소리, 가성 소리 등)이 곡 전체에 배치되어 타악기와 같은 효과를 내고 있다. 흔히 리듬의 구조는 포스트 디스코(보다 좁게는 부기(boogie)), 멜로디 라인은 R&B에 가까운 과도기적인 곡으로 설명한다.[4] 특히 29초에 달하는 전주를 주도하는, 전설적인 베이스라인과 맞물리는 리듬섹션은 디스코에 가깝지만 그보다 상당히 느린 미디엄 템포로 되어 있다. 재미있게도 3년 뒤 발표되었으며 'Billie Jean'과 마찬가지로 팝의 여왕인 마돈나의 시그니처 송이 된 'Like A Virgin'의 베이스라인이 'Billie Jean'의 베이스라인과 비슷한 것으로도 유명하다.[5][7]
마이클 잭슨과 퀸시 존스가 엔지니어 브루스 스웨딘에게 '음향적 정체성(sonic personality)'을 요구한 것으로 유명하다. 즉 마치 가수 목소리의 음색 차이처럼, 단 한 음만 듣고도 '이것이 마이클 잭슨의 노래다'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게 해달라는 것. 보통 1~2번에 믹싱을 끝내는 것으로 유명했던 브루스 스웨딘은 무려 91번(!)의 믹싱 과정을 거쳐 'Billie Jean'의 음향적 정체성을 만들어냈다. 다만 실제로 채택된 것은 두 번째 테이크였다고. 이때는 현대처럼 DAW 즉 컴퓨터를 활용한 음악 프로듀싱이 있던 시절이 아니다. 미디는 커녕 컴퓨터도 제대로 보급되지 않았을 때였고 아날로그 릴테이프로 멀티 트랙 녹음하던 시절인데 그걸 91번 한 것이다.
실제로 이 곡의 도입부는 아주 단순한 드럼의 8비트 라인으로 시작하는데, 베이스가 들어오기도 전에 단지 킥드럼 소리만 듣고도 'Billie Jean'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는 평가를 받으며 '음악 프로듀싱의 교과서'같은 위치가 되었다. 공명감(reverb)을 거의 주지 않은, 날카로우면서도 그루브있는 소리가 일품. 프로듀싱 입문자들이나 초심자들에게 '반드시 좋은 음향 환경에서 "Thriller" 앨범을 주의깊게 들을 것'이라는 불문율을 세운 공신 중 하나.
한편 이 곡은 이후 앨범에서 마이클 잭슨과 퀸시 존스가 결별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유인즉슨, 마이클 잭슨이 느끼기에 이 곡의 완성본은 '처음에 마이클 잭슨이 가져왔던 편곡[8] 과 거의 다르지 않았던 것'. 마이클 잭슨은 이에 당연히 ''''곡의 프로듀서 크레딧'을 요구했고''', 퀸시 존스가 이를 거부하면서 고성이 오갈 정도의 말다툼이 벌어지고 작업이 며칠간 중단될 정도였다고 한다. '괴짜' 내지는 '수줍은 천재' 이미지에 가려져 있는, '''냉철한 사업가로서의 마이클 잭슨'''의 일면을 보여주는 일화 중 하나.
아무튼 이후 가까스로 화해를 하고 녹음을 진행했는데... '''믹싱은 91번 했는데 정작 보컬 녹음은 원테이크에 끝냈다.''' 음색의 맛을 살리기 위해 골판지 상자를 씌우고 보컬 녹음을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여동생인 자넷 잭슨이 코러스를 녹음했으나 맘에 안든다고 자기가 직접 녹음했다고. 편곡에 있어서는 미니멀함의 끝을 보여주는 곡인데... 그러니까, 아주 적은 악기가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이클 잭슨의 보컬을 포함, 사용된 악기 하나하나가 또렷하게 청자의 귀를 자극한다. 어느 한 악기 소리에 조금만 집중하면 그 소리가 또렷이 들리고, '''묻히는 소리가 없다.''' 베이스라인에서 토닉 음을 지날 때 신스 베이스로 더블링을 넣은 걸 빼면 실제 리듬 섹션과 신디사이저 정도로 크게 엄청난 악기나 편곡 기술을 사용한 곡은 아니다. 오히려 곡 자체는 심플하고 단순한데 단지 '''그걸 신급으로 잘 만들었을 뿐이다.'''
처음에 퀸시 존스는 (29초에 달하는) 이 곡의 전주와 특유의 베이스라인을 무척 싫어했기 때문에 그 부분을 들어내려고 했는데, 마이클 잭슨이 단호하게 '바로 그 부분이 있어서 내가 춤추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거야'라며 거절하는 바람에 원래의 모습 그대로 발표되었다. 바로 그 부분이 이 곡의 가장 전설적인 면이 된 것을 고려하면... 훗날 퀸시 존스는 이 결정을 회상하며, '''그 부분이 있어야 마이클 잭슨이 춤추고 싶어진다는데, 당신같으면 뺄 수 있겠냐?'''이라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한편 퀸시 존스는 곡의 제목 'Billie Jean'이 실존인물이자 전설적인 테니스 선수인 '빌리 진 킹(Billie Jean King)'과 헷갈릴 것을 우려하여 곡의 제목을 후렴에서 따 온 'Not My Lover'로 바꿀 것을 요구했는데, 이 역시 마이클 잭슨이 단호하게 거절하며 현재의 빌리 진이 되었다.
4. 가사
곡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대충 이렇다.
노래 속의 주인공은 매혹적인 빌리 진이라는 여성과 클럽에서 섬씽이 있었는데 얼마 뒤에 그녀가 아이를 데리고 와서는 주인공에게 당신의 아들이니깐 그에게 책임지라고 외친다. 주인공은 '그녀랑 섬씽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 그녀가 아름다운 것도 맞지만 그녀는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고 아이도 나의 아이가 아닙니다!' 라고 주장하는 내용이다. 흔히 말하는 가사가 시궁창.[11]
마이클 잭슨이 공식적으로 밝힌 바에 의하면, 이 곡은 '가상'이며 '''마이클 자신이 잭슨 파이브 시절부터 자신들을 따라다니던 그루피(밴드나 음악가를 광적으로 따라다니는 여성 팬)들을 모델로 삼아 창작한 것'''이다. 다만 마이클 잭슨의 형인 저메인 잭슨(Jermaine Jackson)의 경험이라거나, 더 나아가 마이클 잭슨 자신의 경험담이라거나 하는 식의 음모론이 상당히 많다. 사실 이는 애매한 태도를 취하며 마이클 잭슨 자신이 더 부추긴 면도 없지 않은데, 원래 마이클 잭슨은 노래 가사에 여자 이름을 집어넣어서 논란을 부추기는 마케팅을 좋아했다.
자연스럽게 빌리 진의 모델에 관해서는 여러 사람들이 후보에 올랐었는데 가장 유명한 일화로 동명의 유명 테니스 선수인 빌리 진 킹(Billie Jean King)은 그 소문 때문에 '''직접 기자회견을 열고 '나는 그 사람이 아닙니다'''' 라고 해명하기까지 했다. (위에 설명되어 있듯, 마이클 잭슨은 빌리 진 킹이 거론될 것을 알면서도 곡의 제목을 그대로 고수했다.)[12] 은 그 외 훗날 마이클 잭슨과 염문을 뿌리고 실제로도 마이클 잭슨과 친했던 브룩 실즈[13] 가 유력한 후보로 부상하기도 했다.[14]
5. 퍼포먼스
최초의 빌리진 퍼포먼스. 여기서 마이클 잭슨은 최초로 문워크를 춘다.[15][16]
1983년 3월 25일 '''Motown 25: Yesterday, Today, Forever'''에서 이 무대를 처음 공개했다.[17] 당시 반응으로는 아무리 70년대 후반부터 디스코가 그 위세가 껶였다고 해도 여전히 디스코적인 비트와 그루브감이 있던 시절이었는데 '빌리 진' 은 춤을 추기에는 비트가 느리고 그렇다고 러브 발라드 송이라고 하기에는 망설여지는 굉장히 트랜스비트한 리듬의 곡이다. 다만 잭슨이 모타운 25주년 기념 공연에서 빌리 진을 아주 드라마틱하게 표현하며 혁명적인 댄스 무브먼트를 선보였을 뿐이지 전문가들조차도 빌리 진에 맞추어 잭슨이 춤을 추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또한 이 날은 모타운의 25주년 기념 공연이라 모타운의 노래만 불러야했는데, 잭슨은 이날 유일하게 모타운의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그게 바로 이 곡이였다.
'''문워크 퍼포먼스가 사상 최초로 등장한 공연'''.[18] 때문에 위의 영상은 '''TV가 생겨난 이래 인류의 가장 역사적인 순간''' 중 한 장면 등으로 매우 자주 선정된다. 저 모타운 25주년 공연 중 빌리 진이 방송했을 때의 시청률이 '''미국 역대 시청률 5위'''에 빛난다고 한다. 또한 공연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순간 500'''에서 '''202위를 차지한다.''' 무대의 이름 그대로 이 공연은 대중음악의 전후가 나뉘고 영원히 남게 될 무대가 된 것이다.
당시 공연의 전체 영상. 잭슨 5 멤버들과 함께 메들리 이후 빌리 진을 선보였다.[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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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슨의 시그니쳐 노래인 만큼 공연들도 엄청나게 유명하다. 뮤직 비디오와는 다르게 흰 티셔츠, 빤짝이는 가디건, 검은 페도라, 그리고 '''한 손 만 끼는 장갑'''을 쓰고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HIStory 월드 투어 때는 잭슨이 무대에 가방을 직접 들고 나와서 옷을 입는 퍼포먼스가 추가되었다. 그리고 노래를 다 부르고 나면 항상 비트만 나오고 잭슨이 '''던졌던 중절모를 머리에 다시 쓴 다음'''[20] 스포트라이트 밑에서 자유롭게 춤을 추다가 관객석으로 모자를 던지며 퇴장한다.[21]
잭슨즈 Victory 투어 때의 공연 영상.
Bad 월드 투어 때 공연 영상.
Live in Brunei 1996- The Royal Concert - 공연 영상. 이때까지는 100% 라이브로 불렀다.
HIStory 월드 투어 때 공연 영상. 이때부터는 문워크 나오는 전까지는 립싱크로 진행했다.
2001년 그의 솔로 데뷔 30주년 기념공연이다. 사실상 마지막 빌리 진 공연이다. 원곡보다 훨씬 웅장하게 편곡됐다. 여담으로 문워크가 나온 뒤 5:26초 쯤에 마이클 잭슨의 친구이자 나홀로 집에의 주인공인 맥컬리 컬킨이 카메라에 잡힌다. 중간에 손에 있던 마이크가 스탠드로 순간이동 하는 오류가 있는데(7:02) 사실 이 동영상은 공연 2개(2001년 9월 7일, 10일)를 편집한 것이다.
1984년 춤을 연습하는 잭슨의 동영상. 연습 장면이지만 움직임이 남다르다!
6. 공식 MR
2009년에 진행된 밴드 리허설 음원으로 사실상 가이드 보컬이 조금 더 들어간 공식 MR 음원이다. 마이클 잭슨 콘서트의 드러머이자 원년 멤버인 조나단 모펫이 This Is It 투어 리허설 당시의 녹음 음원을 업로드 하였다.
7. 패러디
미국의 코미디 시리즈인 '''In Living Color'''에서 뮤직비디오를 패러디하였다.
8. 기타
- 아기공룡 둘리의 2008년판에서 이 노래가 삽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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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프트 펑크의 Random Access Memories 앨범 아트의 폰트나 시퀸자켓 같은 의상의 컨셉은 대놓고 마이클 잭슨을 오마쥬했다.
또한 유튜브에 검색하기 위해 Billie를 치면 Billie Eilish가 먼저뜨는데, 빌리 진 영상 댓글마다 이러한 불만을 표출하는 사람들과 이에 공감하는 수 천명의 사람들을 볼 수 있다.
2020 국민의 선택 개표방송 그래픽 중 전설의 뮤지션 Part 1에서는 윤건영이 빌리 진에 맞춰 문워크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그래픽이 등장했다.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노래들 중 하나이지만 빌보드 핫 100 올타임 차트에서의 순위는 100위 정도로 아주 높지는 않다.
[1] 1위는 너바나의 Smells Like Teen Spirit(1991).[2] 정확히는 퀸시 존스의 증언이다. 물론 오프닝 베이스라인이 악보로 그려놓는다면 굉장히 유사하지만 실제로 연주되는 필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표절이나 샘플링이라고 말할 수 없고 영감을 받았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잭슨도 그런 점에서 장난스럽게 이야기한 것에 불과하다.[3] 홀 앤 오츠의 대릴 홀이 직접 밝힌 사례에 따르면, 마이클 잭슨과 라이오넬 리치가 주도했던 We Are The World에 홀 앤 오츠 역시 참가했는데 그때 마이클이 대릴에게 접근해 말하기를 "Billie Jean의 베이스 라인은 "I Can't Go For That (No Can Do)"의 베이스 라인에서 가져왔어요."라고 하자, 대릴은 "저도 이 곡의 베이스라인을 다른 곡에서 가져왔습니다."라고 말하며, "그건 우리 뮤지션들 모두가 하는 일이지요."라고 덧붙였다고 한다. 미국 위키피디아 출처.[4] 물론 '댄스 팝'으로 장르를 설명하기도 하고 사실 그편이 가장 정확할지도 모른다.[5] 표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두 곡의 멜로디 라인이 완전히 다르며 애초에 'Billie Jean'은 단조, 'Like A Virgin'은 장조이기 때문. 다만 마돈나측이 영향을 받았음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6] 1965년 빌보드 핫 100 1위, 1965년 빌보드 연말 차트 2위까지 오른, 1965년을 대표하는 초대형 히트곡이다.[7] 허나 "Like A Virgin"의 작곡가는 이 곡의 베이스라인이 1965년 The Four Tops의 대히트곡 "I Can't Help Myself (Sugar Pie Honey Bunch)"[6] 의 특정 부분을 재구성한 것이라고 밝혔다. 두 곡을 비교해 들어보면 알겠지만, 빌리 진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기 보다는 고전 모타운 소울, 그 중의 대표격인 The Four Tops의 영향을 제일 많이 받았다는 것이 맞다.[8] 잘 알려져 있듯, 마이클 잭슨은 스스로 비트박스를 사용해서 노래를 작곡하고 편곡했다.[9] 즉, 아기의 생물학적 아버지[10] 라이브 퍼포먼스에서는 이 부분을 마이클이 다시 페도라를 주워 쓸 때까지 백싱어들이 계속 노래한다.[11] 빌리 진을 비롯해서 마이클 잭슨의 여러 노래들이 가사가 시궁창인 경향을 보인다.[12] 참고로 빌리 진 킹은 1943년생으로 당시 39세였다.[13] 이 노래가 나올 당시 미성년자였다.[14] 브룩 쉴즈는 특히 마이클 잭슨과 일생이 유사하기 때문에 가능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15] 영상 3분 37초경[16] 이 공연이 끝나고 마이클 잭슨은 퍼포먼스가 완벽하지 않아서 울었다는 말이 있다. 그의 프로 정신이 어디까지 갔는지 알 수 있는 부분.[17] TV 방송은 1983년 5월 16일[18] 위 영상의 3분 35초부터 보면 된다.[19] 사실 마이클은 이 공연을 끝내고 무대에 실패했다며 분해서 울었다고 한다. 이유는 문워크 뒤에 이어지는 제자리 스핀후 발끝서기 동작에 실패했기 때문. 5바퀴를 돌기로 준비하고 연습했는데 4바퀴밖에 돌지 못해 연습한 것을 100% 다 보여주기 못했다고 자책했다. [20] 이때 관객들의 환호성이 엄청나다.[21] 이 부분은 모타운 버전에는 없었는데 이후에 생긴다. '''사실상 마이클 잭슨의 숱한 퍼포먼스 중에서도 최고 간지로 꼽히는 레전드 장면.''' Bad 투어 때부터는 이 부분부터 환호성을 유도한다.